Imperfectly perfect

몇 주 전 피아니스트로 활동중인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AI 이야기로 넘어갔다.

랑랑과 같은 수준의 연주 디테일까지도 기계가 완벽히 카피해 들려줄 수 있는 시대, 인간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라이브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뭘까.

지인 왈,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도 라이브 연주중엔 실수를 하는데, 그 실수 이후 어떻게 공연을 이어가는지’가 바로 인간 연주의 묘미라고 한다. 실수를 한 사람과 그 상황이 맞물려 하나의 서사가 생기고, 그걸 이해하는 관객과 만나 공명할 때 유일무이한 작품이 탄생한다. 최근 바이럴이 많이 됐던 아래 영상이 멋진 예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iacoXRQO-8

허비 행콕이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연주에서 배운 것을 설명하는 이 영상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gnAK_bYP-tg… 허비 행콕이 연주중 자신도 깜짝놀랄 만한 실수를 했는데, 그걸 들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잠시 멈추더니, 그걸 이어받아 실수마저 연주의 일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논리라기보단 믿음에 가깝지만, 난 인간이 뉴런 다발에 불과하다거나 그저 고도화된 기계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AI 앞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누군가 이야기할 때마다 이상하게 심술이 나는 모순을 느낀다. 아마도 이건 동족혐오와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한다. 나의 인간으로서의 고유함이 보존되었으면 하는 절박함. 속으로 간절하기는 마찬가지면서 관찰자인 척 거리를 두고보니 그 절박함이 뭔가 초라하게 느껴져서… 요즘은 이런 (포스트휴머니스트적인) 질문도 생긴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 본성이라는 것도 유동적인 것이고 새로운 기술과 어울려 살며 진화해나가는 것에 불과한가. 여러모로 혼란스런 시기.

내가 그러든 말든 AI의 역사는 계속 쓰여져나간다. 아마도 지금 생각하기에 인간만 가능할 것 같은 그 ‘한 끝’이 정복당해가는 걸 우린 계속 목도해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인간의 고유성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이 영상들을 보여줄 것 같다. 따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안할’ 영역이란 생각이 들어서기도 하다. 실수는 의외성이자 비효율이니까. 이걸 굳이 프로그래밍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 라고 생각은 하지만 human imperfection을 의도적으로 기계에 프로그래밍한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힙합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 제이 딜라 (Jay Dilla)가 그 예시다. 딜라는 약간 느린 타이밍에 떨어지는 스네어 소리, 즉 칼박 기준으로 보면 ‘실수’인, 비트 메이킹으로 힙합/알엔비씬의 일대변혁을 일으킨 전설이다. 흥미로운 건, 이후 라이브 세션들이 그의 드럼머신 비트를 카피하기 시작했다는 점.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바꾼 사례. 관련해서 영국 UCL의 기술정책학과 교수이자 드러머인 저자가 쓴 글도 첨부한다. 개인적으로 최근 읽은 기술역사 관련 글 중 가장 재미있는 글이다. https://aeon.co/…/what-drum-machines-can-teach-us-about…

결론은.. 갈 수록 모르겠고, 나는 이 혼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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