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 칼 짐머

영어에 어떤 단어를 말하기가 적절치 않은 경우 ‘-word’로 돌려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인 게 F-word인데, 꼭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욕설이나 여타 금기시되는 표현이 아니더라도, 한 개인에게 아픈 가시 같은 말을 아이러닉 하게 표현하는 데도 종종 사용된다. (축구 커뮤니티에서 팀을 배신하고 나간 선수를 이름 대신 초성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니며 어린이 주일학교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온 내게도 한때 ㅈ-word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진화’였다.


진화를 부정해야만 창조로 시작되는 기독교 교리가 성립한다고 믿고 있던 적이 있었다. 세계의 탄생과 기원에 있어 진화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 마치 기독교인으로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인 줄 알았고, 창조과학이 과학인 줄 알았던 시기였다.


그 나름의 지적 (그리고 나에게 있어선 영적이기도 한) 여정을 여기에 다 풀기엔 너무 긴 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신의 창조를 믿는다면 (그게 문자 그대로의 창조든 아니면 빅뱅의 사용이든 간에) 과학은 그 창조물에서 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일 수 있다는 게 사실 그렇게 대단한 논리적 비약은 아니다. 결국 과학을 어떻게 보느냐의 관점 차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사실 내가 만난 꽤 많은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큰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혹은, 이전 나처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일 수도. 하지만 성경의 한 구절처럼 ‘자유케 하는 진리’가 참이라면 그것은 어떻게 검증하든 답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그런 지적 담대함 또한 교회에서 늘 강조되는 ‘믿음’의 영역 아닐까 난 종종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이건 진화주의자가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사실 해당 이슈에 대해 듬성듬성 알고 있는 게 사실이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이따금씩 움찔움찔했다.


리처드 도킨스 씨처럼 저자가 특정 어젠다를 가지고 쓴 책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진화의 역사는 이해가 딸려 조금 지루했고, 대신 종교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두고 고뇌했던 다윈의 삶을 조망해볼 수 있었던 것이 흥미로웠다. 어떤 의미에선 마르틴 루터와의 유사점도 많다고 느꼈다. ‘과학과 종교’라는 주제가 아예 처음이시라면 #창조론연대기 (김민석 저)도 권할 만한 것 같다. 만화여서 쉽게 읽히고 공부해볼 만한 책 추천도 많이 받을 수 있다.


뭣보다 내게 있어 이 책을 읽은 후 가장 큰 수확은 어제 리뷰한 웹 3.0 (공간 웹)이나 포스트휴머니즘 등에서 드러나는 일련의 흐름들을 진화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도구(=기술)를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인간의 신체는 더 이상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그 변화의 속도가 매우 느려졌거나.)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진보와 동일시되며 거의 종교처럼 여겨지는 지금의 시대는 그런 인류가 느끼는 ‘조급함’의 관점에서 읽힐 수도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성장과 진보를 기술의 발전과 같은 외연의 확장에서 꼭 찾아야만 하는가, 대안은 무엇인가 뭐 그런 질문들도.. 여하튼 좋은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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