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부조리 앞의 인간’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앞서 읽은 ‘페스트’가 극한의 상황 속 다양한 인간군상을 두루 조명했다면, 이 책은 버키 켄터라는 인물의 롤러코스터 같은 심리를 동력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아직 정리하지 않은 테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는 리외나 버키 같은 사람들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폴리오와 페스트,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절망하고, 분노하며 고뇌했다. 솔직히 말해 공감하기 힘들었다. 모태 기독교인인 내게 인생의 부조리란 궁극적으론 나를 벗어난 영역이기에, 그들의 저항은 신이나 우연같은 (버키에게 둘은 동의어다) 외부적 요인에게 결코 삶을 내어줄 수 없다는 애처로운 고집으로 읽혔다. 애썼으나 그 밖에 해석의 여지가 내게 없음에 한 없이 답답했던 일주일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신앙의 이름으로 편리하게 아웃소싱 해온 게 아닐까, ‘부조리’ 말고는 달리 부를 길이 없는 이 사회의 비극적 사건들을 하나 둘 떠올렸다.
소설은 이상과 대의명분 같은 것들 아래서 희생 당하는 인간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194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세계대전 한 가운데 있던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듯.
폴리오라는 극한의 상황 속, 아무 일 없이 현실을 지탱해오던 가치들은 전복되어 무너져내린다. 흡사 ‘그랜 토리노’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떠오르게 하는 버키의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성실, 집념, 책임을 물려줬다. 버키는 늘 스스로에게 떳떳하길 원하는 사람이다 – ‘페스트’의 랑베르는 이 모든 가치를 통틀어 ‘추상’이라고 불렀을 것이라 생각한다 – 별이 빛나는 밤 아래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옆에 누어있으면서도 그 모든 행복을 부정하게 하는 추상. 엉망이 되어버린 자신 곁에 변함 없이 있어주려 찾아온 연인을 무책임하다 선언하는 추상. 안타깝게 뒤틀려버린 버키를 보며 독자는 물을 수 밖에 없다. 대체 이 모든 것들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가?
필립 로스의 작품은 두번째다. 몇년 전 최악의 독감을 앓았을 때 침대에 누워 죽음 앞에서 서서히 사멸해가는 남자의 이야기, ‘에브리맨’을 읽었다. 어째 이 작가의 책은 늘 ‘가학적 독서’과 연결지어 기억될 것 같다. 보통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문장같은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내겐 여전히 어려운 작가이기도 하다. 꼼꼼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글로 정리하다보니 민망할 정도로 놓친 것도 많아 보인다. 한주간의 가학적 독서로 정신이 고생을 했으니 이만 독서모임 멤버들만 믿고 취침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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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생존자’에서 언급된 ‘Kol Nidrei’를 들으며 읽었다. 유대교 속죄의 날 전야에 부르는 기도형식의 성가라고 하는데 책 분위기와도 묘하게 맞아 떨어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