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 알베르 카뮈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터졌을 때부터 생각났던 소설. 지금과 같은 때에 읽으니 극한의 상황 속 다양한 인간군상들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서와 같이 느껴진다. 철학책과 소설 중간쯤 위치한 책이라는 평을 봤다. 생각할거리를 많이 남겨준 책이다.

이방인을 능가하는 카뮈 최고의 히트작이기도하다. 이 책의 성공에는 절묘한 타이밍이 작용했는데, 이 책이 2년만 일찍 출간됐다면 아직 전쟁이 기억속에서 생생했던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을 것이고, 3년만 늦게 나왔다면 냉전의 새로운 아젠다에 막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역자의 친절한 설명.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재밌는 건 가상의 도시처럼 느껴진 이 오랑이 실재하는 곳이고 카뮈가 이 곳에서 페스트를 썼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마 의도적으로 오랑에 대해 그런 (‘보편적으로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건조한 공간’) 인상을 남겨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41년부터 책의 집필이 시작됐는데, 도입부 묘사를 보면 카뮈가 이 도시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느껴진다. 역자 노트를 보면 이건 더욱 분명해진다 – 당시 카뮈는 결핵을 앓아서 그가 좋아하는 수영도 하지 못한 채 오랜기간 격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1942년 요양을 위해 프랑스의 시골로 향했는데, 이후 독일군의 침략으로 그는 알제리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며 아내, 어머니와 단절된 3년을 보냈다. 즉, ‘유배’라는 알레고리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 2차대전이 폭풍이 지난간 후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마르던 프랑스의 젊은 이들은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카뮈 같은 인물들에 열광했고, 이 책이 출간된 당시(1947년) 프랑스인들은 독일군에 나라를 빼앗긴 굴욕적 4년에 대해 이미 둔감해져 있었다. 페스트의 종식 후 모든걸 망각한 사람들의 모습은 그런 시대상을 보며 카뮈가 느낀 씁슬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걸 종합해보면 ‘페스트’라는 상징에 전후 프랑스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대입하는 접근이 타당해보인다.

이 소설의 훌륭한 점은 카뮈가 자신의 도덕점 견해를 분명히 하면서도 ‘가르치려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표현을 따르자면 그는 moralist이지만 moralizer는 아니다) 반기독교적인 작가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카뮈가 ‘초월’을 추구한 페늘루라는 인간상에 대해 가장 적게 공감한 것은 분명해보이나 결국 그 또한 극한의 상황 속에서 나름의 선택을 한 인간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영문판과 대조해봤을 때 한국어판은 페늘루 신부에 대한 작중 화자의 톤을 다소 부정적으로 번역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subtelty’를 ‘교묘하게’로 번역한 것이 한 예.) 같은 이유로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당대 문인들은 이 작품의 중의성을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엔 ‘페스트’에 파시즘을 대입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인간이 어쩌할 수 없는 질병을 문학적 장치로 사용한 결정이 오히려 파시스트들에게 변명거리를 준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책에서도 강조하듯 카뮈는 인간은 복잡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며 선해 보이는 사람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grey zone’, 그런 인간 내면의 복잡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시간이 지나도 클래식으로 불릴 만한 이유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역시 코타르. 작중 어떤 인물에게도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 작가지만 그래도 ‘악한’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간상이다. 상당히 입체적으로 그려진 인물이었는데, 특히 마지막 그가 저지르는 폭력이 또 다른 누군가의 압도적인 폭력으로 진압되는 아이러니를 통해 드러나는 카뮈의 성찰이 남다르다고 느꼈다.

덧,

– 랑베르가 보건대에 합류한 이후 새로운 ‘우리’를 깨닫게되는 건 개인적으론 공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었다. 혈연이나 지연 같은 것들을 뛰어넘는 연대, ‘우리’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알겠는데 그 당위성은 무엇인지. 말하자면 보편적 인류애 같은 것?

– 작가가 ‘정확한 언어의 부재’에 대해 여러차례 이야기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에 따르면 ‘페스트와의 싸움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건 결국 인식과 기억뿐’이기에, 그 전리품을 간직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언어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문장 하나에 매달려 밤을 새우던 그랑이 결국 ‘형용사를 모두 빼버렸다’는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 페스트로 인해 볼 수 없게된 이들에게 ‘사랑과 애정은 추상이 되어’버렸다. 카뮈가 2020년을 배경으로 같은 작품을 썼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지 사뭇 궁금해졌다. 화상챗과 각종 테크놀로지로 연결이 가능한 세상이었다면 그는 21세기의 ‘관계’에 대해 어떤 고찰을 남겼을지..

– 중간 그랑을 통해 잠깐 언급되는 ‘살인을 저지른 아랍인’은 아마도 뫼르소의 오마쥬다. (카뮈 유니버스..)

One thought on “페스트 – 알베르 카뮈

  1. Subtelty가 어떻게 와닿아야 부정적이지
    않은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글이네요.
    책읽음 다시 질문 함 해봐야겠어요 ㅎㅎ

Comments are closed.

Blog at WordPress.com.

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