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fort Zone

길거리에서, 공적장소에서 의도치 않게 함께 머물고 부딪히기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날 흥미롭게 하는 게 물리적 ‘comfort zone’의 범위다. ‘자기 영역’이라고 느끼는 넓이가 천차만별이다. 모르는 사람과 몸이 닿는 걸 질색하는 나 같은 사람은 전철에 앉아 있을 때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마음이 편한데, 이 공간에 대해 무감각한 사람들은 야금야금 내 쪽으로 넘어오고 난 구석으로 쪼그라드는 웃픈 일이 생기기도 한다. 신영복 선생께선 감옥에서 가장 비참한 일은 무더운 여름날 동료 수감자가 36.5도의 발열체, 혐오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때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스스로가 참 하찮게 여겨지기도 한다. 내가 가진 권리가 무엇이길래. 좀 닿고 살아도 편할 것일진데 나 혼자 피곤하단말이지.

얼마전 시내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런던 시내 맥도널드의 셀프서비스 기계를 조사해보니 거의 모든 스크린에서 💩성분이 발견 됐단다. 친구들에게 앞으로 맥도널드에서 주문할 땐 장갑을 끼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이게 뭐라고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단말이지. 어디 맥도널드 뿐이겠는가, 대중교통 이용해서 시내 나들이 한번 다녀온 후 내 옷가지를 검사해보면 온갖 형언할 수 없는 미생물의 세계가 발견 되겠지. 우린 그 옷을 입고 침대에 가서 눕고, 연인의 손을 잡기도하고, 미슐랭 식당에 가서 말끔한척 미식가인척도 하지. 결국 나와 남이 힘 합쳐 남긴 먼지와 똥오줌위에서 뒹굴며, 불편하게 부딪히며 살아간다. 더럽지만 말이다. 대도시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매우 실재적인 의미는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하니 묘한 해방감이 있었다.

어제 만난 홈레스 남자는 나를 두번 안아줬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내 목덜미에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이레도의 향이 났을탠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별인사를 하고 서둘러 약속장소로 향하던 내 몸에선 몇주동안 숙소 없이 거리에서 뒹굴었다는 그의 퀴퀴한 냄새가 베어있었다. 왠지 그게 썩 나쁘지가 않았다. 늘 작은이들과 함께 했던 예수의 근처에 가면 이런 거리의 냄새가 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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