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폴 칼라니티

두번 읽은 책을 손에 꼽는다. 읽는 속도가 원체 느린데 책 욕심은 많다보니 다음 읽을 것들에 늘 쫓겨사느라.

그런 내가 이 책을 세번째로 찾은 이유. 폴 칼라니티라는 사람이 내 마음 한곳에 남아 잊혀지지 않음이다. 구약성서의 전도서를 읽을 때마다 난 그의 삶을 떠올린다. ‘이 책의 저자를 정말 만나보고 싶다 … 그러기에 너무 늦은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라는 이국종 교수의 추천사는 일독 직후 내 마음이었다. 아, 그를 정말 만나보고 싶었다. 진정 회고록으로선 대성공을 거둔 책이라 할 수 있다.

일독 때는 ‘죽음’이란 주제에 머물렀고 재독 후 ‘직업과 소명’을 곱씹었다면, 이번엔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을 생각했다 – 의미에 대한 고집스런 질문들이 그의 삶을 만들었다. 의학 공부를 시작한 것부터 커리어와 전혀 무관한 여름캠프에 요리사도 자원봉사를 나간 결정까지, 자기 인생의 역사가로서 이렇듯 자기 동기에 대해 명확할 수 있다는 것이 심히 놀랍다. (위대하다, 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일상이 흐르고, 그러면서 질문은 더욱 예리해지는 그런 삶.

또 한가지 새롭게 눈에 들어온 대목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던 저자가 생생한 직접경험의 세계에서 다시 문학으로 돌아가며 남긴 말이었는데, 그는 이 경험을 담아낼 ‘언어’가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경험의 세계를 만난 이후 문학이란 허구의 세계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느꼈다며 다신 소설을 찾지 않는다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생각났던 지점. 문학세계의 상상력이 빈곤하다 느낄만큼 생생한 경험을 소유한 것도 아니고, 그만큼 읽기의 끝까지 나를 몰아가본 적도 없는 내겐 아직 답이 없다. 치열하게 자기 역사를 써내려간 두 사람을 생각하며 비루한 내 사유의 깊이와 산만한 일상을 그저 돌아볼 뿐.

‘의미가 삶이 될때’라고 한줄평을 적었다.


북클럽을 진행하면서 보통 한 책을 두번 읽다보니 한/영을 대조해 보게되는데, 오역, 생략, 과한 의역등이 놀라울 정도로 흔하다. 이중 상당수는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부족, 거기서 오는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잡아내지 못하는 것인데 이 부분은 역자가 아무리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도 영어권 국가에 충분히 살아본 경험이 없다면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그렇다고해서 한국의 독자들이 차선에 만족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 그런데 종종 역자가 무성의했다고 밖에 볼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불필요한 프로세스, 관료주의’를 뜻하는 ‘red tapes’를 직역해서 빨간 테이프가 어쩌구 저쩌구 써놨다던가 하는 번역을 보고 있자면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다. (사전만 찾으면 나오는 관용어구인데 대체 얼마나 귀찮았으면..!) 특히 문학작품의 경우 오역에 더해 역자의 문체라는게 첨가되어 사실상의 2차 창작물이 되는데, 당장 생각나는 예시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던 폴 칼라니티의 에세이 ‘숨결이 바람될 때’가 있다.

폴 칼라니티가 딸인 케이디에게 남긴 마지막 문장은 ‘죽어가는 한 남자 (a dying man)의 남은 날들을 충만하게 채워줬다는 걸 부디 기억’해달라는 의미였는데, 여기서 굳이 객관화 시킨 ‘한 남자’라는 표현을 한 것은 분명 작가가 의도한 바였다. 언젠가 자기 딸이 삶과 죽음을 생각할 만큼 장성했을 때, 사진으로만 봤을 아빠라는 사람이 한 인간으로 다가올 그 때를 생각하면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고치고 고친 이 문장을 완성했을 것이다. 여기서 원문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아빠’라는 단어로 ‘한 남자’를 대체한 건 명백한 번역자의 월권이며 특히 이 경우는 아주 끔찍한 선택이다. (의역을 해야하는 부분도 아니었는데 이런 선택을 내린 이유를 이해 할 수가 없다. 아빠라는 단어의 어떤 심금을 울리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라고 삐딱하게 볼 수 밖에.)

별개로 지난번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ㄱ씨의 번역에 혀를 내둘렀는데 지금보니 내 책꽂이에 그의 작품이 한두권이 아니란 사실. 심지어 저 책을 지인에게 선물한 적도 있다! 원서가 영문일 경우는 영어로 읽는 걸 원칙으로 하지만 종종 책디자인의 차이에서 오는 소장가치 및 가독성의 문제로 한글판을 선택할 때가 있는데, 앞으론 더 철저히 고수해야 할 원칙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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