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읽을거니까

필요 없는 책을 또 추려낸다. 앞으로 손이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책들 중에서 어떤 센티멘탈 벨류도 없는 것들로. 책장만큼 죄책감 없이 허영스럴 수 있는 곳이 또 있겠나 하면서도 수납이 불가능할 정도로 책을 가지는 건 또 분수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이젠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덜어낼지를 고민하게 됐다. 어쩌면 좋은 책을 고른다는 건 사지 않아도 될 책을 미리 알아보는 것일지도. 중얼중얼 하며 몇번 솎아내다보면 그런 책들의 유형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드는 생각이, 움베르트 에코의 대서재도 폼나지만 지금 거의 꽉 차있는 다섯개의 책장으로 평생 사는 것도 그럴듯 하다 싶다. 비워야만 새로 채울 수 있는 내 책장엔 언젠간 읽어야만 하는 회한 같은 책들, 이미 거쳐갔지만 두번이고 세번이고 다시 읽을 책들, 가득채운 메모 때문에 민망해서 누굴 주지도 못할 책들, 이 남아서 나와 함께 누렇게 바래져가겠지.

Comments are closed.

Blog at WordPress.com.

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