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라라랜드 후기

– 먼저, 마법 같은 시간을 선사해준 데미안 샤젤에게 박수를. 영화 혹은 소설, 어떤 이야기속에 너무나 깊이 몰입하면 – 마치 온몸을 사용해서 보고 들은 것처럼 – 실재로 몸이 물리적 피로를 느낄 때가 있다. (가장 최근 이런 경험을 했던 게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나서였는데 그땐 말그대로 몸이 두들겨 맞은 듯 축 늘어지는 것 같았다.) 더구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엄청난 기대와 hype를 가지고 작품을 대했으니 이런 경험은 더욱 흔치 않다.

– 모두가 꼽는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은 마지막 플래쉬백이겠지만 내 마음이 가장 격하게 동했던 순간은 미아의 마지막 오디션씬이다. 실재로 같이 영화를 관람한 친구 중 하나가 2주후 미국에서 드라마스쿨 오디션을 보는 배우지망생이었다는 재밌는 우연 때문이었을까. 미아의 초조함과 두려움 뒤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내게 모두 전달 된 기분이었고 그래서 부분적으로 세바스찬보단 미아에게 감정이입이 됐다. 개인적으론 ‘so here’s to..’ 부분을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했을지 궁금.

– 감정이 최고조에 다다르는 이 시점에서 격양된 톤으로 ‘나에겐 꿈이 있어요! 나도 스타가 되고 싶어!’를 결연히 외칠 줄 알았는데 난 이 장면에서 데미안샤젤에게 땡큐!를 외친다. 이 노래는 단지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찬가가 아니었다. 대신 꿈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바보처럼 보이고, 시행착오를 겪어 본 사람들을 위한 노래였다. 멀쩡하게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나와 6년동안 아무런 성과 없이 문을 두드렸던, 절박한 마음으로 빚까지 내면서 1인극을 준비한 미아였기에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생각해보니 내 마음이 아팠던 건 그때문이었을지도. 듣는이로서는 동했으나 내 노래라 부르기엔 부끄럽겠다 싶어서.

– 세바스찬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재즈바에서 징글벨을 연주할 때 한번, 풀장에서 Take On Me를 연주할 때 한번, 그리고 새 밴드와의 첫 합주 때 한번. ‘I don’t belong here’라고 말하는 듯한 어색한 표정에 나도 피식 웃었지만 그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 적어도 나한텐 그랬다. 생존의 문제와 누군가에 대한 책임감 앞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멀어지는 기분. 나 또한 그 갈림길에 서 있다.

– 뮤지컬 장면이 끝나면 격한 안무 뒤 여전히 헉헉 거리는 배우가 바로 대사를 치는 식의 구성이 흥미로웠다. 그건 우리 매일의 일상도 깔끔하게 정돈된 choreography가 없을 뿐, 매순간이 뮤지컬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가 아닐까. 말하자면 예술의 일상성.

– 그런 의미에서 (내 기억으론) 영화중 유일하게 뮤지컬과 현실이 분리되는 마지막 회상씬이 더욱 흥미로웠다. 이 장면 때문에 어떤 이는 이 영화를 ‘슬픈 결말’이라 말하기도 했다. 꿈을 이뤘으니 ‘해피 엔딩’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영화는 그런 식의 결말을 짓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그저 삶은 선택의 연속일 뿐이며 선택은 끊임 없이 배제하는 것이라고 매우 담담하게 얘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  라라랜드와 ‘담담’이란 형용사가 함께 사용된다는 데 누군가는 의아해 하겠지만 난 그랬다. 달콤과 씁쓸함, 환상과 지독한 현실이 공존하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삶의 결국에 대한 긍정이고 찬가로 마무리 된다.  그래서 결말에 대해 굳이 편리하게 얘기하자면 난 해피엔딩에 가깝다고 말 할 것이다. 사랑이 이뤄졌다거나 염원하던 꿈을 이뤄서가 아니라, 삶은 계속 되는거니까. 지나고 돌아보면 다 아름답게 남길 수 있는 그런 기억들이 있고, 서툴고 씁쓸했던 결착들이 모여 우리 삶을 더욱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거라고. 마지막 두 사람은 그걸 알아 웃을 만큼의 여유가 생겼기에, 결국은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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